불황

페인팅레이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ㅣ불황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다들 불황이라고 한마디씩 한다.그렇다고 굶어죽는 친구들은 없었으며,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부모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우리네 인생에서 언제 불황이지 않은때가 있었던가.



어린날 내 사주엔 언제나 삼재가 들어 물가엔 가지 말아야 했으며 높은 곳은 삼가해야 했다.
기억컨데 내게 삼재 아닌 해가 있었던가. 언제한번 세상이 불황이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경제는 늘 어려웠고, 정치는 음모를 꾸며대고 세상은 그렇듯 불만 덩어리,늘 개선거리 투성이였다.



금요일 저녁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불황을 애기하는 이 시간, 우리는 이미 불황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몇만원의 사치를 부릴 여유가 있다면 불평하지 말일이다. 그 몇만원으로 한달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송어

송어는 자그마한 외부의 자극에도 벽에 머리를 처박고 자멸한다고 했다.
불편하게 자리잡은 좁다란 공간에서 치밀한 조직을 짜내어 피토한 물바닥. . . 삶은 그렇게 자극적인 것이라 했다.

하지만 송어는 자그마한 평온의 순간이 오면 또 그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가 무덤덤한 물짐승이 된다고도 했다.
분노와 폭음과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면 무참히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닮아
참을 수 없는 자멸감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관념을 지녔다고도 했다.

스산한 겨울, 차가운 목마름. . .그리고 평온을 되찾은 송어처럼 가난한 마음으로 태어난 우리는
분노하는 법을 배우고, 편 가르는 법을 배우고, 또 짓밟는 법을 배우먀 그렇게 다시 살아가는 것이다.



▷ 그림동화는 2000~2002년도 작업으로 <연애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2004년 휴먼앤북스를 통해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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