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홍윤숙

김춘화
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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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


바람 소리 귀 세워

두어 번 우편함을 들여다보고

텅 빈 병원의 복도를 돌아가듯

잠잠히 내 안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누군가

나날이 지구를 떡잎으로 말리고

곳곳에 크고 작은 방화를 지르고

하얗게 삭는 해의 뼈들을

공지마다 가득히 실어다 버리건만

나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나뭇잎 한 장도 머무르게 할 수 없다


내가

이 가을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의자에 앉아

정오의 태양을 작별하고

조용히 下午를 기다리는 일이다

정중히 겨울의 예방을 맞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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