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희수연(稀壽宴)

김춘화
2024-07-02
조회수 172


해처럼 빛나고 달처럼 은은한 그녀가 77세가 되었다.

미류나무가 멋진 밀양 어느 부락에서

여름이 시작되는 음력 오월에 태어나

한 세상 서사를 만들어 온 그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여 얼굴 곳곳이 패였지만

초롱초롱 눈빛 만큼은 그대로다.

아주 가끔 보여주지만 말이다.


엄마, 부르면 빙그레 웃으신다.

좋은 건지, 반가운 건지, 어색한 건지 

하나도 짐작할 수 없지만

그 인자한 미소가 설레게 한다.

어쩌다 눈 마주치면

니는 좋다, 얼마나 좋노, 참 좋다 하는 말을 해주신다.

엄마, 내가 어디 살아?

엄마, 내가 누구야?

엄마, 이름은 뭐야?


우리들의 연결 고리를

손톱만큼이라도 기억해 내셨으면 해서

부질없는 질문을 해제낀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묻는 나를 보며 

당황하는 엄마는 낯선 이가 되신다.

당장에,

엄마, 나는 서울 살아, ^^

엄마, 나는 엄마 딸이야, ^^

엄마, 이름은 OOO이야, ^^

긴장을 멈추고 나를 보는 엄마에게

엄마, 엄마가 기억 안나도 괜찮아 ~

그 때 마다 내가 계속 말해주면 되니까.

그 덕에 나는 엄마, 엄마 자꾸 불러 좋으니까,^^


점점 더 흐릿해지고

밥 먹는 속도나 걸음이 느려지지만

곤히 주무시는 엄마를 물끄러미 볼 수 있고

쭈글쭈글 엄마손 만질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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