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동화달력 <뉴칼레도니아의 꿈>이 나왔습니다.

김계희
2020-12-01
조회수 843



글을 쓰는 것은 간단하다. 녹슨 수도꼭지에 관해 쓰거나, 새벽 세 시에 관해 쓰거나,
별것 아닌 것을 특별하게 만들 은유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쓰고 나서도 모자람을 느낀다면 나는 병길이의 이야기를 쓰면 된다.
병길이의 사랑 이야기, 병길이의 유월 이야기, 병길이의 실패 이야기.
이를테면 병길이가 녹슨 수돗물을 마신다거나,
병길이가 새벽 세 시에 녹슨 수돗물을 마신다거나,
병길이가 유월의 새벽 세 시에 녹슨 수돗물을 마시고 실패를 거듭했다거나.




물론 나는 병길이의 뉴칼레도니아에 대한 희망찬 꿈으로 글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흔이 되면 신비의 섬 뉴칼레도니아에 가서 살겠다고 늘 읊조리던 그의 꿈.
하지만 그는 어느새 오십이 되었으니 십 년 전 이미 실패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글은 쓸쓸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뉴칼레도니아 이전의, 어느 사월 해맑은 아침의 병길이에 관해 쓰기로 한다.




학창 시절 우리는 별일도 없이 병길이에 관해서 묻곤 했다.
주로. 병길이 왔냐? 라거나, 병길이 봤냐? 라거나,
우리는 그 말을 과제 했냐? 라는 말보다 더 자주 했다.
펑펑 최루탄이 터지는 교정 사이로 하루키를 옆구리에 끼고 교정을 오가던 병길이의 해맑은 모습을 따라
덩달아 양을 쫓는 모험에 합류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혁명과는 결을 달리하는 세대가 되었다.
저마다 옆구리에 하루키를 끼고 병길이 봤냐? 고 물을 때면
우리는 서로 화합하고 동화되는 듯한 마음이 들어서
병길이가 보이지 않을 때조차 우리는 병길이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병길이가 보이지 않는다면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했고,
병길이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 연애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병길이는 자주 우리를 떠났다가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 돌아오곤 했다.




커트 코베인의 Nevermind 앨범이 발표된 그해 교정은 술과 연애와 휘파람으로 찬란했다.
물기 빠진 감자가 널브러진 축축한 작업실을 빠져나와 학교로 걸어갈 때면
목이 늘어난 셔츠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섬유 탈취제 냄새가 났지만,
꽃무늬 스커트를 펄럭이며 미술관 계단을 오르는 산양 같은 무리의 누나들은 아름다웠고,
유학을 떠나며 남긴 선배들의 말은 왠지 멋진 미래인의 메시지 같아서,
훗날 작업실의 감자들도 그 메시지처럼 위대한 예술로 탈바꿈할 것 같은 기대감에 설레곤 했다.

술에 취한 휘파람이 교정 담벼락을 덮고, 동양화과 남학생들이 쳐들어오고,
터진 코피가 새벽바람에 흩날리고, 목련꽃 이파리가 뚝뚝 떨어지고,
-누나들을 휘파람으로 불러서는 안 됩니다 - 사과문을 붙이고,
술에 취해도 지켜야 할 규범이 있음을 듣고, 끄덕끄덕 대답하고,
다음날이면 무슨 이야기였는지 까맣게 잊고, 휙휙 방학이 지나가고,
젊은 날의 무대는 머무를 틈 없이 금방금방 배경이 바뀌었고,
커트 코베인의 죽음과 함께 우리의 청춘도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안 해도 되는 시시한 일들을 위해 밤을 새우고, 순진한 에너지를 쏟았음에도 드러나는 것은 볼품이 없고,
볼품없는 밤을 아무리 반복해도 시간은 넘치도록 쌓이고...
그러다가 어느 새벽 놀란 듯 벌떡 몸을 일으킨 우리 앞에는 엄중한 선고처럼 졸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쓸모없는 초상화를 태우고, 김광석이 타계하고,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미래인들이 비정한 현실의 언어를 쓰기 시작하고,
면접을 보고 나오며 우리는 말아 접은 벼룩시장을 뒤적거렸다.
병길이가 돈 많은 프랑스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다거나,
그 여인이 프랑스인이 아닌 콜롬비아인이라거나 하는 소문은,
커트 코베인이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With Or Without You를
들려주는 U2의 익숙한 노래처럼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바, 병길이는 프랑스 여인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화가에 실패하고, 아이스크림 사업에 실패하고, 떡볶이가 세트 메뉴로 나오는 피자집에 실패하고,
그리고 다시 실패할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던 병길이는 오랫동안 축축한 유월 속에 있었다.
그 유월은 두꺼워지다 못해 뚱뚱해진 나뭇잎이 하늘을 다 가린 컴컴한 동굴 같았다.
세루리안블루에 번트엄버를 섞은 듯한 짙은 색깔의 숲은 빽빽하고 컴컴해서 아무도 그의 실패를 목격할 수 없었다.
나는 칠월의 끝머리 즈음에 서서 병길이를 바라보며,
사람이 저렇게 실패를 하면서도 다시 꿈을 가지는구나 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굳이 병길이가 아니라도 그때 우리는 다들 실패를 했다.
연애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하고, 외상값을 갚는 것에 실패하고,
하다못해 라면 스프 자국을 캔버스에서 지우는 것에도 실패했다.
어쩌면 우리의 청춘은 좌절과 실패의 병길이 같았다.
순수하고 연약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도전이나 성취 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서
낙오되어도 낙오된 줄 알지 못한 채 ECM에서 나온 음반들을 들으며
오일 낮밤을 구름 바라보기를 할 수 있는 병길이와 같았다.
물론 개중에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어 눈부신 삶을 시작한 철수 같은 아이가 있기도 했지만,
철수는 취직 후에도 빈 병을 모아 슈퍼마켓에서 잔돈으로 바꾸는 것에
유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어서, 아무도 철수를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병길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8년 1월의 정오였다.
검은 정장에 푸른색 베르사체 넥타이를 느슨히 푼 차림의 그는
타란티노 영화의 고뇌하는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새벽의 술집은 캄캄하고 갑갑했고, 나와 철수는 시끄럽고 분주했으며, 병길이는 말이 없었다.
그해 겨울 덮친 혹한에 입술이 얼어붙은 병길이는
말아 피우는 담배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유일한 위안인 듯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병길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사이 그렇게 된 거야, 라고 철수는 말했다.
병길이의 새로운 실패를 알지 못했던 나는 그사이 돈을 버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보세요? 병길이구나,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그러는 동안 폭염이 몰아닥쳤고, 노랗게 잎새가 물들었고, 비닐하우스 지붕이 몽창 내려앉았고,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졸업을 하고,
당연히 은유와 농담의 유희를 영원히 함께 나누게 되리라는 예상이 빗나갔음을 안 것은 그날부터였다.
나와 병길이는 조금은 다른 세상에 서 있게 된 것 같았고,
이봐, 우리가 서 있는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야. 라는 말이
지구 어느 편에서부터 발밑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병길이의 퇴장과 함께 우리의 청춘도 챙강챙강 저물고 있었다.




이미 눈치챘을 것이지만, 그 후 병길이의 뉴칼레도니아의 꿈도 영원한 실패로 끝이 났다.
녹슨 수돗물의 저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병길이가 가고자 했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비밀의 섬은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글로벌한 관광지가 되었고,
그래서 그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 4월의 해맑은 이야기는
결국 ‘쓸쓸한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당신은 병길이에 대해 이렇게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분주하긴 했는데 실속은 없었지. 애쓰다가 지쳐 버렸어.
혹은 이렇게 회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열정적이고 빛나는 안감을 가진 깃발 같았지.
또는 이렇게 회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웃음과 망각의 책처럼 가볍고 유쾌했지.
그에 대한 우리의 술회는 각자 다를 것이지만, 그에 대한 추억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우리는 차츰 공통되는 지점에 다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병길이를 만난다면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고, 그 실패들에 대해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우리는 다만 실패했을 뿐, 그때 우리는 너무나 어렸고 연약했고, 청춘은 실패를 알기 위해 건너는 강이었다고.
하지만 일필로 써 내려간 우리의 연애편지들은 너무나 순수했고 강렬했고 아름다웠으며,
그 시절은 가장 절박한 어둠 속에서 가장 밝은 빛을 뿜어낸, 단 한 번 무수히 꽃을 피웠던 순간이었다고.




겨울이 깊은 일월의 어느 아침, 나와 철수와 병길이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하늘에서는 펑펑 눈이 내리고, 눈 덮인 도로 위에는 With Or Without You가 다시 경적을 울릴 것이다.
철저히 외면당한 첫사랑은 영원한 미학이 되고,
우리의 패배는 공중으로 흩어지는 웃음과 망각의 책이 되어,
퍼붓는 눈을 뚫고 우리를 새로운 해안에 닿게 할 것이다.
수고했다 김병길, 굿바이 뉴칼레도니아.




Epilogue

병길이를 다시 만난 것은 지난해 겨울이었습니다.
새벽이 늦은 작업실에서 다시 은유와 농담이 오가고, 난로 위에는 감자가 익어갔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가 있지만, 나와 병길이 사이에는 우리만의 언어가 있어서
그 언어를 통해 우리는 많은 비극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청춘은 무언가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농담과 웃음을 시도하는 시간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가난 속의 청춘은 무거웠고, 연애는 늘 좌절되었고, 우리는 가벼워질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심함을 이기기 위해 몰두할 것을 만들어 내고, 목적이 없는 목표를 위해 애썼지만,
결국 그것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가벼운 농담과 웃음으로 흩어지곤 했습니다.
청춘이란 순수함과 연약함과 게으름과 무책임함이 완전히 허용된, 삶에서 단 한 번 받을 수 있는 술잔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무수히 꽃필 수 있었던 이유는,
한 호흡 끊김 없이 써 내려간 우리의 일필의 마음, 그 간결한 무모함과 용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철수는 빈 병을 바꾸어 모은 돈으로 캠핑카를 샀고, 저는 스물두 번째의 달력을 만들고 있으며,
병길이는 4천 페이지의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을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모호하고 복잡한 문체 속에서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에 또 실패할지 모르지만,
빛나는 영감을 주는 아름답고 우아한 문장들을 계속해서 우리는 발견해 나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 무모했고 찬란했던 시절을 함께 해주었던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페인팅레이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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