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동화달력 <옥상의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김계희
2019-11-25
조회수 357




옥상의 시멘트가 마르자, 세상은 옥상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줄을 선 아이들이 계단을 올라 옥상 아래로 뛰어내리면,
그 뒤로 다른 아이가 뛰어내리고, 그 뒤로 또 다른 아이가 뛰어내렸다.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다시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다음 날이 되면 또 옥상으로 몰려가 뛰어내렸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그 놀이를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옥상의 공사가 끝나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개구리를 잡으면 되는 거였다.
옆집에서 키우던 올빼미는 개구리를 많이 먹어서, 세상은 다시 개구리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또 올빼미가 죽으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다시 토끼를 키우면 되는 거였다.
삶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았다. 사소한 배반이 있었다면, 오백원에 산 그 작은 토끼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미친 듯이, 계속, 풀을 먹어댄다는 사실이었다.
더불어 우리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계속, 풀을 뜯어 날라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풀을 먹어대던 토끼는, 어느 날 갑자기 새끼를 낳기 시작했다.
그 예쁜 토끼가 새끼를 한번 낳기 시작하더니,
한 달이 지나자 또 새끼를 낳고, 또 한 달이 지나자 새끼를 낳았다.
그 반복은 14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그건 배반이 아니라 일종의 공포와도 같았지만
우리의 미친 에너지에 토끼의 미친 번식력은 궁합이 잘 맞아
우리는 미친 듯이 들을 누비며 계속 풀을 뜯어 날랐다.
반복, 반복은 그 시절을 대변하는 완벽한 단어였다.




그러다 그 새끼가 자라 또 다른 새끼를 낳았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의문으로 번지기도 전에 모든 생각을 덮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콩콩콩... 콩콩콩...스카이 콩콩콩...
저녁노을 속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사라진 그 소리는
은하철도가 은하수를 건너는 이른 아침에 다시 시작되었고
순식간에 온 마을을 장대한 리듬으로 가득 덮어 버렸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때가 되면 밥을 주거나,
잠들 무렵 이불을 깔아주는 것 외에 우리와 연관된 적이 별로 없었다.
빨리 들어오라거나 빨리 숙제를 하라는 말 외에는 그리 많은 말을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빨리’에도 ‘숙제’에도 충실하지 않아서, 그런데도 별일은 생기지 않아서,
그들의 그런 말마저도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른 종족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월이 되면 그들은 우리의 세계로 건너와
소풍 가방에 과자를 넣어주거나, 운동회가 다가오면 새 신발을 사주기도 했다.
그리고 간혹 우리가 강물에 떠내려갈 때면
장마에 불어터진 누런 강 속을 헤엄쳐 들어와 우리를 건져주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어머니들은 비닐하우스의 세계로 떠났고, 우리는 다시 자맥질을 시작했다.




위급한 순간을 제외한다면, 우리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은 강둑에 저절로 자라는 풀을 바라보듯 무심하여서
그 느긋함에서 우아한 격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무심함을 지키다가도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간혹 생각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리듬은 놀람 교향곡의 템포처럼 드물게 긴장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만이었다. 어머니는 금세 또 무심한 교향곡 속으로 들어가
빨래를 하고, 밥을 차리고, 비닐하우스로 갔다. 밥은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박자는 정확했고, 밥은 늘 따뜻했으며, 우리는 밥을 먹고 나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완전히 분리된, 어떤 개입도 간섭도 없는 그 세계 속에서
우리의 미친 힘들은 발휘되었고. 우리의 미친 놀이는 오랜 나날 동안 완벽히 보호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스쳐 지나는 가로수의 무수한 이파리 한잎 한잎을 한눈에 다 들여다볼 수는 있었다.
그 이파리들이 공중을 회전하며 한꺼번에 여름과 작별하는 소리를 정확하게 들을 수도 있었다.

맨드라미가 출렁이며 씨를 터트리는 소리, 사과나무가 잎을 떨구며 공기를 흔드는 소리,
나무 둥치를 휘감고 차오르는 강물의 소리, 그 강물에 포도나무가 누렇게 잠기는 소리,
그 소리들 속에 온종일 우리를 맡긴 채 들로 나가신 어머니들에게도
우리에게 바라던 꿈과 기대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들의 꿈을 우리의 꿈이라 착각하도록 만들지는 않았다.




콩콩콩... 콩콩콩...
저녁 하늘을 가득 메우던 그 소리가 언제부터 들리지 않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애국가가 그쳤고, 빈 토기장엔 눈이 쌓였다.
그리고 적막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눈이 녹은 토끼장 위엔 낯선 서류들이 쌓여 있었고,
우리는 옥상을 오르내리던 그 미친 힘으로 또 미친 듯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새벽 다섯시 알람이 울리면 출근을 한 오빠는 잉크가 가득 묻은 소매를 하고 퇴근을 했다.
검게 물든 와이셔츠 소매는 푸르게 물들던 어린 시절의 풀물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낯선 템포...
반복은 계속되고 있었으나 우리는 그 반복 속에 무언가가 빠져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생각을 시작했다.
생각은 옥상을, 옥상은 토끼장을, 토끼장은 거대하게 펼쳐진 들판의 풀냄새를 상기시켰다.
기차가 다시 은하수를 날아오르고, 우리 소년 시절 마음속 환영이 아름다운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속삭였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낯선 반복 속에는 리듬이 빠져있었다는 것을.
지리멸렬한 풀냄새 속에서도 솟아나던 명랑함. 혹은 의욕, 어쩌면 즐거움이.




우리의 온 에너지가 지루한 반복 속에 쓰이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
회사를 그만둔 오빠는 그가 늘 흥얼거리던 노랫말을 따라 마르스로 떠났고,
심심함에 질려 토끼장에 불을 낸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르스의 삶은 고되고 불투명했으며,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다.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의 삶에 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어머니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는 우리를 이끈 그 소리들 속에 다시 우리를 맡겨둔 채
조용히 빈집에서 화분을 기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고되고 설레는 미지의 밤과 새벽을 반복하는 시간 동안,
어머니의 화분은 차츰 계단을 덮고 대문을 막을 정도로 불어났다.
소식 없는 자식들의 안부를 말없이 기다리며, 어머니는 무심히 잊은 듯이 지내다가,
그리고 간혹 생각난 듯 화분에 물을 주었다.
아무렇게나 뒤엉켜 자라난 식물들은 어머니의 수수한 리듬 속에서 때가 되면 철을 알고 꽃을 피웠다.
그리고 무심한 교향곡 저편에서, 아무도 모르게 우리도 조금씩 무언가를 회복해 갔다.




더 늦기 전에 나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등 뒤에서 불안한 눈빛을 보내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우리의 미친 힘들을 온전히 뿜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셔서,
그 힘으로 자신을 믿고 정확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그리고 먹지도 않는 밥을 끼니때마다 준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무심한 듯 여겨지던 그 리듬이
어머니의 최고의 기도, 최고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Epilogue

인생의 성공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면 행복한 삶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찾기도 전에 사회가 원하는 욕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쉽고,
그중 부모님은 사회적 욕구를 대변하는 가장 가깝고도 강한 집단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님의 욕구를 자신의 욕구라 착각하게 되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자신을 검증할 기회도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그렇게 믿어 버린 후,
어느 날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처음의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 자신이 가장 기쁘게 몰두했던 순간이 언제인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저의 어머니는 잔소리가 없는 분이셨고, 큰일에도 노심초사하지 않는 의연함이 있으셨는데,
그 의연함이 제가 지닌 천성을 과감하고 자유롭게 표출하면서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나 스스로를 신뢰했으며, 그 신뢰가 자신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었는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 안전할 것이라고 안도감을 주었는가?
그 안도감으로 인해, 두려움 속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목표로 다가갈 수 있었는가?
결국,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었는가?
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힘의 근원에는 부모님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믿게 하는 힘, 그것은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이 우리를 창조적인 삶,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동화달력이 스물 한해를 맞았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동화달력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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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드디어 2020~~!!!! 올해 그림이 너무 좋아요
아~~눈물나ㅠ
올해도 수고했어~좋은 작품 고맙고~♡
올해는 더 추억으로 우리를 데려가주는 동화달력이네~~ 해마다 익숙하게 소식이 들려와야 할 때 들려주는 고마운 겨울안부~~~ 건강하게 지내고~~ 나는 누구누구누구에게 선물을 해야하나 행복한 고민을~~~
고마와요. 올해도.
혹시 올해는 달력 안 만드시는 건 아닌가 하는 요상한 생각을 했더라니깐요. ^^

우리 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전 엄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 이상하게 엄마가 보고 싶더라니. 이 달력을 만나려고 그랬나봐요.^^
아님. 그냥 나이 먹어서 그런 건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