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동화달력 <준비된 세계>가 나왔습니다.

김계희
2017-11-27 07:02
조회수 118





왜 다시 파리가 되었는지 모른다.
삶은 다시 안락해지고, 안락함이 무기력과 고요히 손을 잡을 때쯤,
어느 날 문득 나뭇잎처럼 가벼운 생각 하나가 찾아들었다.
파 리 에 가 야 지
누군가 머릿속에 그 말을 톡 집어넣은 것처럼,
파 리 에 가 야 해



<!--[if !supportEmptyParas]--><!--[endif]-->일을 배우러 일본으로 떠나기 전 서점에 간 동찬이의 눈에
문득 들어온 것은 <아프리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집어 든 동찬이는 며칠 후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리고 십오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아마도 처음엔, 우연처럼 가볍게 그 책을 집어 들게 했을 것이다.
그를 위해 준비된 삶이, 처음엔 그렇게, 나뭇잎처럼 가볍게.



대학을 졸업하던 해 헝가리에 갔다.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 때문이었다.
프라하의 봄 때문에 프라하에 갔고, 전혜린 때문에 뮌헨을 여행했다.
“히말라야에 가지 않을래?“라는 친구의 말에 당연한 듯 짐을 꾸린 것은
히말라야가 동물의 이름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단순한 서정 때문이었다.
여행이란 그런 사소한 시적 이미지로 시작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체험을 위해,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if !supportEmptyParas]-->영화‘투와이스 본'의 먹먹한 감동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보스니아로의 여정은 그 영화 때문이었다.
내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조한 도시의 묘지 앞에는
노인들이 기나긴 한낮을 채우기 위해 무료하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도 내전으로 한두 명의 가족이나 친척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장기 한판을 이기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삶이 그럴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endif]-->낡은 거리를 걸으며 파괴된 것들을 새로이 매만지고 있는 것을 보노라니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가 떠오른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65명의 친척을 잃고도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
여동생과 조카 셋을 잃고도 월드컵을 보기 위해 난민촌에 안테나를 세우는 청년,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삶이란 여전히 그렇게 경이로운 것일까...
여행 중에 네팔의 지진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신은 결코 우리를 절망케 만들기 위해 시련을 보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 중세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프로방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서 헤비게스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틀리에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천진하고도 순수한 그림에
가슴이 뛰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스물다섯 살, 암스테르담에서 고흐를 처음 보았고
그림이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헤비게스를 만나고 나서야 내가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에서
다시 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집요해졌고,
욕망은 내 안의 기쁨과 진실을 넘어버렸다.



파리를 떠나기 전, 다시 프로방으로 갔다.
작별에 앞서 나는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고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그 화려한 기술들은 때론 순수함을 덮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나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당신의 그림에서처럼 감동하지는 않아요.
당신을 만난 것은 이 여행에서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다시 ‘파리’여야 했는지.



아틀리에를 나와 밀밭을 걸으며, 이 여행이 오래전부터
조화롭게 계획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났지만, 내가 떠나온 이 세계가
내가 체험해야 할 것들이 가득한 완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바라보던 고흐의 찬란히 빛나던 배꽃이,
히말라야에서 만난 지상과 다른 순수한 눈빛들이, 그리고 헤비게스 할아버지가,
그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이 나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은
모두 한가지였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은 순수함을 되찾는 것, 진실한 그림을 통해 진실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아마, 위대한 예술가들의 탄생은 신의 드러냄이었을 것이다.
그들과 같은 맹렬한 삶을 우리의 삶 속에도 체험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체험을 회피하고, 감동이라는 쉽고도 근사한 도구를 만들어
감상과 감동의 체험에만 머물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빛이 두려워 커튼을 친 채 풍경을 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그림을 들고 갤러리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린
고흐의 삶이 위대했다면, 우리의 삶도 위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분노하고 화내며, 자신이 믿는 진짜를 향해 맹수처럼 맹렬히 간
그의 삶이 경이롭다면, 우리의 삶도 경이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꼭 체험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삶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다.
아프리카로 떠난 동찬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에게 필요한 체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위해 준비된 세계가‘진실함’이라면,
그것이 내 삶에서 완전히 체험될 때까지
삶은 계속해서 나를 그 세계로 불러들일 것이다.
아마도 그곳에 완전히 이를 때까지 나의 이 기나긴 여행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이어진 프로방의 푸른 들이, 구름 속의 바람이 속삭인다.
"너는 순수한 꽃들과 꽃들 사이 함께 피는 순수함으로 돌아가라.
순수함은 들판에 핀 꽃이다. 그것은 이미 완전하다.
순수함에 헛된 것들을 입히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쌓았던 그 조작된 세계들이 무너지면
그 폐허 위에 빛나는 한 송이 꽃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짙은 향기에 너는 감동을 느낄 것이다."



epilogue

다큐멘터리 영화 <Searching for Sugar Man>에서,
두장의 팔리지 않는 앨범을 남긴 채 사라져간 멕시코 이민자 출신의 로드리게스는
자신이 남아공에서 국민가수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노동자의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이십오 년 후, 그에게 남아공에서의 대규모 공연이 제안되었을 때,
그는 오랫동안 그 순간을 준비해 온 사람처럼 유유히 남아공행 비행기에 올라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게 됩니다.

고흐의 편지에는, 위대한 일이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이루어지며,
분명 쓰레기 같은 그림이라는 말을 들을 게 뻔하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그림이
진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자부심 강한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되는 듯하지만, 우리의 행동에는 이미 앎이 들어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계는 이미 완전하게 설계되어 있고,
우리는 예정된 그 세계의 한 부분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달력을 시작했을 때, 겨우 네 권의 달력이 팔렸지만,
오빠와 저는 이십년 후에 우리의 달력을 모아 전시회를 여는 것과,
달력 수익금으로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며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는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열일곱 번째 달력을 준비하는 지금, 오래전 그 대화 속에
이미 우리의 삶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올해 달력은 이번 여행에서 만난 헤비게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순수함을 간직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그동안 미루고 있었던 약속과 희망에 대해 뉘우치고, 고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페인팅레이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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