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페인팅레이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ㅣ러브레터



유년시절부터 유난히 많던 짝사랑.
나를 사랑한 그녀는 보잘것 없는 나를
언제나 영웅을 만들곤 했지만...






내가 사랑한 그녀는 나를 몇시간이나 움추리게 한 후에도
나의 어리숙함을 비웃곤 했다.




내가 받은 러브레터는 몇 번의 밤을 지새워
쓰고 또 지우며 보내졌을 테지만...



내가 보낸 러브레터는
단 한번의 비웃음으로 사라지기 일쑤였을 것.




그렇게 무참히 세월은 흐른 후, 러브레터...
더이상 받을수도 보낼수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설레임 없는 세월이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러브레터... 나를 영웅으로 만들곤 하던
그 러브레터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연애

홀로인 것에 익숙해질 때면 난데없이 연애가 찾아온다
남자들은 비슷비슷한 맹세로 여자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여자들은 생전 처음 듣는 고백인 양 해맑은 얼굴로 남자를 안심시킨다.
마지막엔 단 하나도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굳게 나누고
날이 뿌옇게 밝아오면 통화량만큼의 깊은 사랑이 이번에도 증명된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그를 위해 입을 크리스마스 정장을 사러 다니지만,
그러나 가을에 시작한 연애는 꼭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끝이 난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이별의 이유를 떠넘기고
독수리처럼 날아온 사랑은 참새처럼 치사하게 끝을 맺는다.

깃털의 무게 같은 감정을 놓고 어리석게 저울질 하다.
문득 이별보다는 보여줄 이 없어진 새 옷이 안타까워진다.
어린날의 서정은 그렇게 사랑을 겪으며 시들해지고
후에 겪을 상심에 시작의 설레임도 이제는 거추장스럽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 사랑에 세월이 가고,
홀로인 것에 다시 익숙해질 때면 또다시 난데없이 연애가 찾아온다.


Yiruma-First Love


▷ 그림동화는 2000~2002년도 작업으로 <연애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2004년 휴먼앤북스를 통해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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