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페인팅레이디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ㅣ무지개


계단을 올라가면 조그마한 옥탑방에 누이가 있다.
작고 보드런 다리가 유난히 가늘던 하얀 누이,
그 방 창 아래 피어 있던 파란 나팔꽃
화분에 물을 주러 옥상에 오를 때면 방안의 누이를 살피며
살금살금 발끝이 조심스러웠다.



왠종일 누워있는 하얀 누이, 수국처럼 파랗고 줄기처럼 가늘던 누이의 손목,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 볼때면 방 안 가득 물결치던 아련한 살냄새.


빳빳하던 나팔꽃잎이 뜨거운 오후 볕에 봉지처럼 쪼그라들 때면
나는 옥상 바닥에 물을 뿌리고 열이 식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 송글송글 땀 맺힌 이마를 드러내며 뽀얗게 웃던 누이의 얼굴.
누이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보던 날, 나는 해질녘까지
앞들의 반딧불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나는 아마 무지개였을 거구마.
내가 맨날 무지개 생기는 꿈을 안꾸나.
그러면 마음에 무슨 독이라도 질러진 것 맨쿠로
가슴이 콱 맥히도록 그렇게 좋았지를 ..."

"누나야, 걱정 마라. 이 꽃이 다 떨어지면 무지개가 생길거라,
그러면 내가 이 거울로 꼭 무지개를 보여 줄 거구마."


뭉글뭉글 이상한 것들이 목구멍 가득 넘어올 것 같던 그 해 여름,
그 아름답던 누이가 병속의 알약마냥 힘없이 쓰러져 갈때도
그 여름내내 석류꽃은 예쁘게 꽃을 피웠다. 



그러던 어느날... 누이가 옥탑방에서 모습을 감추고 어른들의 눈물 속으로 사라졌을때,
마당의 석류꽃이 피었다 쓰러지고 기나긴 장마가 거짓말처럼 깨끗이 끝장났을때... 



그날, 아아-그날...  



하늘에 걸려 있던 무지개...
슬픈 누이의 하얀 무지개... 



Cantilène-André Gagnon


▷ 그림동화는 2000~2002년도 작업으로 <연애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2004년 휴먼앤북스를 통해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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