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 신동호

김춘화
2022-05-11
조회수 7


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며 늘 고민이다.

늘 고민인데 억지로 보내고 만다.


정확히 오전 열 시 나는 진보적이다.

보수 언론에 분노하고 아주 가끔 레닌을 떠올린다.

점심을 먹을 무렵 나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배고플 땐 순댓국이, 속 쓰릴 땐 콩나물해장국이 생각난다.

주식 같은 건 해본 일 없으니 체제 반항적인 것도 같은데,

과태료나 세금이 밀리면 걱정이 앞서니 체제 순응적인 것도 같다.


오후 두 시쯤 나는 또 오락가락한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통합진보당 후배들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새누리당 의원의 글을 읽으면서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41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2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친구 김주대 시인의 글을 읽으며 킥킥

그 고운 눈매를 떠올리다 보면 진보, 보수 잘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그 일도 양단이 참 대단하고 신기하다.

주대가 좋아하는 큰 엉덩이에도 진보와 보수가 있을까? 싶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나는 존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술 먹자는 전화가 온다.

열 중 아홉은 진보적인 친구들이고 하나는 그냥 친구다.

보수적인 친구가 나에겐 없구나, 생각한다.


오후 여덟 시 나는 대부분 나쁜 남자다.

가끔은 세상을 다 바꿔놓을 듯 떠든다.

후배들은 들은 얘길 또 들으면서도 마냥 웃어준다.

집에 갈 시간을 자주 잊는다.


오후 열한 시 무렵이 되면 나는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다.

어느새 민주주의와 역사적 책무를 잊는다.

번번이 실패하지만 돈을 벌고 싶고, 일탈을 꿈꾼다.


자정이 다가오자 세상은 고요하다.

개구리는 진보적으로 울어대고 뻐꾸기는 보수적으로 우짖는다.

뭐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늘 그렇지만 사상보다 삶이 먼저라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진보적일지 몰라, 하면서

대충 잔다.


 





신동호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실천문학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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