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 이정록

김춘화
202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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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동차 밑을 좋아하는 까닭은

덩치 큰 것들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지

나를 만나려면 눈을 내리깔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들어와야 하지

고독을 아는 자는 그늘을 사랑하지

내 몸은 저음을 내쉬는 목관악기

자기 몸을 연주할 줄 안다는 건

어슬렁거릴 특권이 생겼다는 것이지

내가 담장 위를 산보하는 까닭이지

우쭐거리고 싶으면 따라 해 봐

나는 한 치 두려움도 흔들림도 없지

내 꿈은 새털구름을 연주하는 것

간혹 발을 들어 구름의 맛을 보지

그러니까 넌 내 친구가 확실해

난 네 가슴속 먹구름의 환한 등짝을 알지

쥐새끼들을 부르르 떨게 할

무시무시한 악보를 협연할 수도 있지

누가 가슴속에다 악기를 넣어 두겠어

스스로 문을 닫고 처박힌 게 아니라

태풍의 눈을 지휘하고 싶은 거지

지금은 속도를 높일 때가 아니라

구름을 깔고 앉아 고독을 정비할 때






이정록 시집 <까짓것> 창비교육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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