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 마종기

김춘화
2022-06-30
조회수 23


왼쪽 다리가 언제부터 저릿저릿 아프다.

해가 갈수록 아픈 게 더한 거 같다.

척추관협착증인가, 뭐라더라,수핵탈출증?

어쨌든 늙어 생긴 퇴행성 변화가 틀림없어.

그래도 은퇴를 한 뒤니 얼마나 다행이냐.

잘 적에는 아프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절뚝이지 않고 걸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나이 들면 어디가 아픈 것은 흔한 일인데

그게 사람을 좀 겸손하게 만드니 다행이다.

물론이지, 부자가 못된 것도 다행이다.

냉동 생선같이 차가운 눈을 안가져도 되니까.

힘이 달려 생각을 천천히 하는 것도

조금은 조용히 말하고 느리게 행동하는 것도

나이 들어가는 내 안이한 머리에는 다행이다.


제일 다행인 건 들은 듯한 곳으로 향하는 걸음,

그 길에서 가끔 들리는 따뜻한 음성의 위안,

누구는 그게 다 생각 나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기댈 곳이 늘 있으니 다행이다.

어둠 속에서 혼자일 때, 세상을 헤맬 때

손잡아주는 동행이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마종기 시집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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