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지기 내 동무 - 한승원

김춘화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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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기 어린 시와 풋사랑에 질퍽하게 젖어 살던 스무 살 시절

한밤중에 부르는 소리 있어

골목길 걸어 앞산 잔등 넘어가면

그놈이 밤안개 너울 쓰고 달이랑 별이랑 바람이랑

백사장이랑 갯바위랑을 짓굿게 희롱하며 너울거렸습니다,


포구 주막의 까맣게 그은 와사등 아래서 쌉쌉한 막걸리 한 됫병에

가오리의 지느러미 안주로 먹고 모래밭으로 나와 혀 굽은 소리로

이 자식아, 왜 불러냈어? 하면 그놈은

싱긋 웃으며 덩실덩실 춤만 추었습니다, 


머리칼이 희어지고

그 시절의 시와 사랑 안개구름 속으로 사위어간 이즈음도

무시로 불러내는 소리 따라 발밤발밤 여닫이바다 모래밭까지 걸어 나가

이 자식아 왜 자꾸 불러내? 하면 그놈은

마찬가지로 싱긋 웃으며 어깨춤 엉덩이춤만 움씰거립니다,

그놈의 깊은 속뜻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여 나는 물 좋은

농어회나 낙지 안주에다가 술 한 병 들이켜고,

코 찡긋거리고 어깨 움씰거리며

그놈의 춤을 그냥 즐길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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