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인생을 쓰다 - 고재종

김춘화
2025-02-02
조회수 18


매일 하루 분량의 나를 창조한다는 어느 작가처럼

매일 하루 분량의, 핏빛으로 이글거리는 것들이

늦가을 저녁답, 싸늘한 잔광 속의 억새처럼

무장무장 무너져 내리는 그 쓸쓸함을 노래하랴


한밤중이건 수업 시간이건 가리지 않고 한 달에

무려 3000여 건의 문제 문자메시지를 치는 소녀들의 시절에

나는 나를 지우기 위해 글을 쓸까


삼류 인생에나 적합한, 삼류소설 같은 게 드러내는

바로 그 오줌색 종이 빛깔을 닮은 삶의 내력들은

늦가을 강변, 노을녘을 향해 긴 울음의 목을 쳐드는

황소의 바리톤 하나 정도는 건졌으련만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세계 속에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매 10분마다 자기를 출몰시키는 소녀들의 시절에


네가 보고 싶어 울었다, 는 신파극의 독백 같은 것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인생의 경우도 있는 법,

네가 보고 싶어 울었다, 고 쓰는 순간

나는 하루 분량의 고독을 창조한 것이려니


밤이 칠흑의 순수한 힘으로, 죽음의 첩자처럼

고양이의 형형한 눈빛을 방사하는 만큼은

꽃 다 졌다고 우는 한 사람의 세월을 몰래 쓰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