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 황인숙

김춘화
2019-02-08 23:08
조회수 45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매일매일 내 창엔 고운 햇님이

하나 씩 뜨고 지죠.

이따금은 빗줄기가 기웃대기도,

짙은 안개가 분꽃 냄새를 풍기며

버티기도 하죠.

하지만 햇님이 뜨건 말건

안개가 분꽃 냄새를 풍기건 말건

난 상관 안해요.

난 울지 않죠.

또 웃지도 않아요.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나는 꿈을 꾸고

그곳은 은사시나무 숲

난 그 속에 가만히 앉아 있죠.

갈잎은 서리에 뒤엉켜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난 울지 않죠, 또 웃지도.

은빛나는 밑둥을 쓸어보죠.

그건 딱딱하고 차갑고

그 숲의 바람 만큼이나.

난 위를 올려다보기도 하죠.

윗가지는 반짝거리고

나무는 굉장히 높고

난 가만히 앉아만 있죠.

까치가 지나가며 깍깍대기도 하고

아주 조용하죠.

그러다 꿈이 깨요.

난 울지 않죠, 또 웃지도 않아요.


내 가슴은 텅 비어 있고

혀는 말라 있어요.

하지만 난 조금 느끼죠.

이제 모든 것이 힘들어졌다는 것.

가을이면 홀로 겨울이 올 것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내게 닥칠 운명의 손길.

정의를 내려야 하고

밤을 맞아야 하고

새벽을 기다려야 하고.


아아, 나는

은사시나무숲으로 가고 싶죠.

내 나이가 이리저리 기울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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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를 읽을때면 대학 이삼학년때던가 선배에게 선물받은 시집이 생각나요. <새는 자유로이 하늘을 풀어놓고> 던가 제목이 그랬던것 같은데.
그 시집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여기서 오랜만에 그 시인을 만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