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감 - 안도현

김춘화
202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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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씨 한알 묻었다


나는 대지의 곳간을 열기 위해

가까스로 땅에 열쇠를 꽂았다

(…)

산수유 가지에 새가 앉았다가

곁들여 무슨 생각 하더니 날아간다

꽃 이름을 몰라서 가웃거렸을까


새야,

다음에 올 때는 식물도감 들고 오너라


벚꽃이 매달렸던 그 자리에

벚꽃을 잊지 않으려고

버찌가 열렸다


모란 옆에 편지를 써서 보내면

죽은 누나 살아와서

설거지하느라 바쁠까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잔디 깎다가

방아깨비 두어마리 허리도 잘랐다

그러고도 나 저녁밥 잘 먹었다


더이상 시끄러지지 않게

미나리는 발목을 얼음장 속에 넣었다


이름에 매달릴 거 없다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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