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의 시 - 김선우

김춘화
2025-11-03
조회수 37


나는 작은 씨앗 하나였던 적이 있고

햇살을 쌓아 유록빛 몸을 만든 적이 있고

한 줌의 낟알을 길러 누군가에게 먹인 적이 있고

서리 깔린 들판 위 노을에 물든 적이 있고

 

나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자그마한 부리와 날개로 커다란 뻐꾸기를 기르는 걸 본 적이 있고

비바람에 젖은 어린나무의 가느다란 등줄기를 닦아주고 싶어 한 적이 있고

 

나는 겨울 강에서 마른 풀반지와 함께 얼었다 풀려난 적이 있고

여름 물과 가을 물의 밀도가 다른 것을 알고 있고

봄이면 물 위로 뛰어오르는 잉어의 마음을 알았던 적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한 소년의 손아귀에서 뜨겁게 뛰는 심장이었네

강물을 떠도는 삶이 어쩐지 싫어져

나는 왜 하필 여기 떨어진 지푸라기일까 생각하던 때였지

 

온 힘을 다해 소년을 떠받쳤네 지푸라기일 뿐이지만

무지개…… 무지개 같은 심장이 되어주고 싶었지


물을 토해낸 소년이 구급차에 실려 떠난 뒤

아득한 마음 강둑에 누워

내가 소년을 구한 것이 아니라

소년이 나를 구했다는 걸 알았지

 

그리고……

그리고……

 

바람이 부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