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버린 말을 찾아서 - 황동규

김춘화
2025-11-04
조회수 30


입춘 가까워 추위 잠깐 풀린 어제 저녁

시의 혈관 건강 살피는 비평가 이숭원 교수와

사당동 조그만 횟집에서 만나 한잔하다가

그만 내 뇌혈관 상태 들키고 말았다.

운 떼려다 멈칫하게 만든 낱말,

신문이나 휴대폰에서

매일 두세 번씩 만나고

언제부터인가 가족이 모일 때

내가 그 병에 걸리면 집에 두지 말고

즉시 요양원 보내라고 여러 차례 당부한

그 말,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아

그만 디멘셔(dementia) 하고 말았다.

이리저리 설명하니 이 교수가 치맵니다, 했지.

한평생 영어로 먹고산 셈이지만

매일 뇌에서 영어 낱말 열 개씩 지워지는 지금,

별일은 참 별일이다.


바로 조금 전 글 쓰다 어제 그 말 넣으려 하자

이번에도 영 떠오르지 않아

할 수 없이 사전 꺼내 dementia를 찾았다.

루마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 종족 말살 행한 독일인의 말로 시를 쓰며

프랑스 파리에서 살다 센강에 몸 던진

시인 파울 첼란,

그가 독일어로 마신

‘검은 우유’*가 새삼 생각나는 아침이다.


 


 


* 파울 첼란, 「죽음의 둔주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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