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 고두현

김춘화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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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뒤따라오던 길이 나를 앞질러 가기 시작한다.

지나온 길은 직선 아니면 곡선

주저앉아 목 놓고 눈 감아도

이 길 아니면 저 길, 그랬던 길이

어느 날부터 여러 갈래 여러 각도로

내 앞을 질러간다.


아침엔 꿈틀대는 리본처럼 푸르게

저녁엔 칭칭대는 붕대처럼 하얗게

들판 지나 사막 지나 두 팔 벌리고

골짜기와 암벽 지나 성긴 돌 틈까지


물가에 비친 나뭇가지 따라 흔들리다가

바다 바깥 먼 항로를 마구 내달리다가

어느 날 낯빛을 바꾸면서 이 길이 맞느냐고

남 얘기하듯, 천연덕스레 내 얼굴을 바라보며

갈래갈래 절레절레


오래된 습관처럼 뒤따라오던 길이 갑자기

앞질러 가기 시작하다 잊은 듯

돌아서서 나에게 길을 묻는 낯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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