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서 물건으로 - 이승하

김춘화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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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種)이 사라지는 아픔은 없다

코뿔소가 사라지는 아픔은 없다

코끼리가 사라지는 아픔도 없다


나, 소비의 주체이니

돈을 벌어 물건을 살 뿐

나, 카드의 주인이니

카드를 꺼내 사인을 할 뿐

나, 승용차의 소유자이니

기름을 채워 운전을 할 뿐


때때로 자식을 데리고 대공원에 가면

코뿔소는 아직 코에 뿔이 달려 있고

코끼리는 아직 코가 손이다

상아 있는 코끼리가 있다

코뿔 없는 코뿔소는 없다

종(種)은 아직도 엄청나게 많고


나는 서서히 살아간다

생명에서

나는 부지런히 사라진다

물건의 사용자로

물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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