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주 - 고창환

김춘화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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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나무보다 더욱 외롭다

수맥을 짚어 자라지도 못하는

그들은 나무보다 거친 기억을 갖고 있다

뒤틀림이 자유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무의 아름다움과

민감한 정신이 빛날 때마다

비늘처럼 일어서는 푸른 욕망들


이 삭막한 겨울 들판엔

얼마나 많은 구멍이 숨쉬고 있는걸까

나무들의 희망이 땅 밑으로 자라고

서로의 발가락을 더듬어

은밀한 속삭임을 주고받을 때

그들이 베어내는 녹슨 기억들은

땅 위에서 부슬부슬 흩어지곤 한다


기다림의 그 깊은 통로를 

그들은 오래도록 서성여온 것이다

어쩌지 못할 간격으로 세상이

결박되어 있음을

마주선 오랜 세월이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나무보다 더욱 외롭다

나무보다 쓸쓸하고 나무보다 가볍다

맨살의 고단함이 직립으로 버티는

밤에도 그들은 잠들지 못한다

바람이 끌고 가는 무수한 길을 따라

누군가 마른 꿈을 날려보낼 뿐

그들은 나무보다 쉽게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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