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가을, 은행 앞에서 - 성미정

김춘화
2024-11-17
조회수 10


더이상 신용대출 해줄 수 없다는 은행에서

우리가 제법 돈푼깨나 갖다 바치는 가맹점이라고

슬쩍 흘려봐도 요지부동인 은행에서


고객만족서비스  행사중이라며 건네준

휴대용 치약과 칫솔 세트


그래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이거지


은행 앞 은행나무는 참 오래도 살았다지

은행을 가진 자본가들처럼 말이지


우리의 장난감 가게는 그들의 노회한 눈에는

애들 장난처럼 비치겠지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유난히 구린내를 풍기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듯도 싶어


귀와 코를 막고도 얼굴이 노래진 채 은행 앞을

서성이고 있는 나는 저기 저 구부러진

허리를 숙인 채 떨어진 은행 알을 줍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노파와 똑같은 거지


은행이 싸구려 동전심(銅錢心)으로 던져준

휴대용 치약과 칫솔로 귀부터 닦아야 할지

코부터 닦아야 할지


늙가을 햇살이 치약처럼 싸아한 은행 앞에서

나는 아직도 헷갈려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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