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 - 성미정

김춘화
2022-09-15
조회수 252


유일한 재미라야 가끔 맥주를 마시는 것과

재미라곤 약에 쓸려고 해도 없는 남편을

골려주는 재미로 사는 35살의 가정주부 성모 씨가

어느 날 띠포리라는 멸치 비슷한 말린 생선을

만난 후 다양한 재미에 빠져드는데


띠포리에서 깨끗한 국물을 뽑기 위해선

대가리와 내장을 발라내는 게 필수

그런데 이 띠포리란 놈은 멸치와 달리 납작하고

뼈가 센 것이 특징이라 잘 벗겨지지 않는

재미와 손가락을 찔리는 재미

게다가 금방 손질을 끝낼 수 없는 재미까지 있는데


35살의 주부 성모 씨는 띠포리를 손질하는 게 재미있을수록

띠포리가 줄어드는 만큼 불안 또한 켜져 가는데

급기야 띠포리를 다 손질하지 않고 심심할 때마다

조금씩 아껴 손질할 생각까지 하게 되고


어느 적막한 밤 성모 씨가 남편에게 묻기를

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

남편 배모 씨는 너무나 비장한 아내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 혹시 띠포리가 떨어지면

아내가 자살할까 봐 내심 걱정이 되길래

띠포리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사서 채워놓으리라


그날 이후 35살의 주부 성모 씨의 인생엔

근심 걱정이 없다는데 세상이 아무리 지루해도

띠포리가 있고 띠포리를 사 주겠다는

남편이 있으니 더 이상의 행복은 욕심이라며

자신을 타일러가며 띠포리를 손질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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