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감기 - 마종기

김춘화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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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는 무슨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약한 면역력이 더 큰 이유라니

산을 넘어가는 저 바람을 잡아

내일의 행선지를 우선 물어봐야겠다.


끝없는 어지럼증이 머리 뒤에서 돌고

신열과 한기가 가슴을 싸고 흔드는데

꽃이란 꽃은 시들어 땅에 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오는 심한 이명이었구나.


사연이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곡절을 물으면 모두들 한나절일 텐데

눈감고 떠나는 마르고 작은 꽃씨같이

빨리 늙어 확실한 길을 걷고 싶어서

젊었던 나이가 힘들었던 나여.


밤새 잎을 다 털어버린 나뭇가지들

얼어가는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가을은 그 빈 나무에게 그늘을 내주고

아무도 없이 늙기만 기다리던 내게는

단풍과 낙엽이 가는 길을 보여주었다.

나는 더 이상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감기는 그렇게 내게 왔다.

저녁녘이면 문을 닫아걸던 꽃들이

문도 못닫은 채 힘없이 고개 숙이고

우리 손잡고 잠자지 않을래? 물었다.


그건 그냥 도움을 청하는 말이었을까,

우리라는 말에 홀려 우리를 마주 안고

드나드는 병균과 면역을 주고받았다.

감기 열도 칼바람 앞에 서면 물러가겠지,

살아갈 날들을 두 손으로 꺾고 싶었다.







마종기 시집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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