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 지나가지 않는 날에 - 김왕노

김춘화
2022-11-12
조회수 19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

지나가지 않는 날에

지나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오히려 지나가고

내 손에 오래 머물러야 할 지복이 지나갔다.

백년복사꽃 아래서 백년을 약속한 사랑이 떠나갔다.

지나가지 말아야 할 것이 지나간 흔적이 가난으로 남고

홧김에 마셔버린 술병이 무화과나무 아래

산처럼 쌓여가며 빛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

지나가지 않는 날에 여기저기 새로운 봉분이 생겨나고

사자 밥을 먹으러 오시지 않았는지

어머니 기일 날에 촛불이 흔들리지 않았다.

마당에 목련 꽃이 어머니 생전처럼 뚝뚝 지지 않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

지나가지 않는 횡포로 오래 마스크로 함구한 나날

입안에서 말이 썩어가고 혀가 썩어간다는 것이 소문만이 아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 지나가지 않는 날에

여기저기 틈만 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낙서를 했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이 이 또한 지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이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과

은밀히 모이거나 어울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의 강력한 정부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의 당국이나 중앙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의 복지센터나 쉼터나 공원

장미가 활짝 핀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의 정원을 만들자고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의 물밑작업으로 청사진을 그리기도 했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는 것의 기세에 밀려

도리어 내가 위태위태하게 지나갈 뻔했으나

가까스로 지푸라기 같은 꿈을 붙잡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

반드시 지나가리라는 단단한 꿈 하나를


 





웹진 『시인광장』 2022-0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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