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날 - 임보

김춘화
2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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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혼례식에 참석했고

어제는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늘은 아직 일이 없으니

몇 줄의 글을 읽으며 빈둥거려도 된다


내 자리가 높지 않아 찾아오는 이 없고

내 가진 것 많지 않아 욕심내는 이 없고

각별히 사랑하는 이 없으니 시새움 걱정 없고

지나치게 미워하는 이 없으니 원망에도 자유롭다


아침엔 세 평의 채소밭에 나가 물을 주고

낮에는 뜰의 풋고추, 씀바귀 잎을 따다

향긋한 된장에 찍어 물 만 밥을 씹는다

저녁엔 잘 익은 매실주 둬 잔이 기다리고...


늙은 소나무엔 아침저녁 까치들이 드나들고

감나무 매화나무엔 종일 참새들이 드나들고

호박덩굴엔 호박벌, 능소화엔 개미 떼들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도 온종일 손님들로 북적댄다


세상에 지천인 이 평화를

나누어 가질 사람이 없어 민망하다.


 



임보 잠언시집< 山上問答 > 시학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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