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왼손가락으로 쓰는 편지 - 고정희

김춘화
202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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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만나고 돌아오다가

안양쯤에 와서 내가 꼭 울게 됩니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그대 모습을

몇 번이고 천천히 음미하노라면

작별하는 뒷모습 그대 어깨쭉지에

아무도 번접할 수 없는

독자적인 외로움과 추위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대 독자적인 외로움과 추위가

안양쯤에 와서

더운 내 가슴에

하염없는 설화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대 독자적인 외로움과 추위를 마주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처절합니다

되돌아가기엔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앞으로 나가기엔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대 땅에 뿌려놓았읍니다

막막궁산 같은 저 어둠 어디쯤서

내 뿌린 씨앗들이 꽃피게 될는지요

간담이 서늘한 저 외롬 어디쯤서

부드러운 봄바람 나부끼게 될는지요

기우는 달님이 집 앞까지 따라와

안심하라, 안심하라, 쓰다듬는 밤

열쇠를 끄르며 나는 웃고 맙니다

눈물로 녹지 않을 설화는 없다!!

불로 녹지 않을 추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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