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수건 하나 목에 걸고 집 앞의 냇가로 세수하러 가던 아침 생각납니까? 돌담 보루대 위로 활짝 핀 나팔꽃들이 기어오르고 풀밭길 이슬에 젖어 발등이 차갑던 아침. 나는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가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잠이 덜 깬 채 앉아 있으면 누나는 내 얼굴을 쓱쓱 문질러주고 활짝 핀 나팔꽃을 손에 쥐어주었지요. 누님은 나이 스물에 일본으로 가고 그 아침도 따라서 바다를 건넜지만, 내 가파른 마음자리 어느 구석엔 아직도 빛 하나 바래지 않은 풍경으로 살아 있지요. 세월이 깊어갈수록 지워지지 않고 되살아오는 것들은 그 시절입니다. 사람들이 쓸쓸해지고 밤하늘의 별빛조차 야위어가면 누님의 활짝 핀 나팔꽃이 떠오릅니다.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가에 철부지 어린아이로 앉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 옆엔 누님이 있겠지요. 깨끗한 수건 한 장을 들고.
누님, 수건 하나 목에 걸고 집 앞의 냇가로 세수하러 가던 아침 생각납니까? 돌담 보루대 위로 활짝 핀 나팔꽃들이 기어오르고 풀밭길 이슬에 젖어 발등이 차갑던 아침. 나는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가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잠이 덜 깬 채 앉아 있으면 누나는 내 얼굴을 쓱쓱 문질러주고 활짝 핀 나팔꽃을 손에 쥐어주었지요. 누님은 나이 스물에 일본으로 가고 그 아침도 따라서 바다를 건넜지만, 내 가파른 마음자리 어느 구석엔 아직도 빛 하나 바래지 않은 풍경으로 살아 있지요. 세월이 깊어갈수록 지워지지 않고 되살아오는 것들은 그 시절입니다. 사람들이 쓸쓸해지고 밤하늘의 별빛조차 야위어가면 누님의 활짝 핀 나팔꽃이 떠오릅니다.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가에 철부지 어린아이로 앉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 옆엔 누님이 있겠지요. 깨끗한 수건 한 장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