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집 - 박형준

김춘화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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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잎이 무성한 강기슭에 서서 한 여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죽은 사람을 강물에 떠내려 보내기 위해 물단지의 물을 시체에 뿌리는 여인을. 그녀는 해가 저물 때까지 물단지에 강물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허공에서 따라냅니다. 나는 불볕더위 속에서 사람의 손이 틀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의 손에 서리가 내려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서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엄숙해서 허공에서 물 따르는 소리가 순백의 한(恨)으로 그녀의 손에 맺혔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나는 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곡소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울음도 없는, 풀잎이 무성한 강기슭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물 따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인이 물단지의 물을 허공에 바쳤다가 따라내면 강물은 천상의 음료에 취해갔습니다. 강물은 시체를 품고 붉은 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누군가 시체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진물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녹아 한줄기 흘러내렸고 닫혀 있던 시체가 꽃봉오리를 활짝 열었습니다. 강물이 꽃불을 싣고 먼 바다를 향해 떠나갔습니다. 강물 저 너머, 우리는 불탄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수평선에서 잿더미들이 쌓이고 다시 불씨들이 허공에서 치솟는 그 불탄 집으로 돌아가 시체는 다시 태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강물에 번지는 황혼에도, 반짝이는 물단지의 물이 섞여 흘러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인은 강물 속에서 영원한 화음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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