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 허연

김춘화
2025-07-04
조회수 19


무엇이든 딱 잘라서 말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진다

일 없는 늦은 저녁

설렁탕 한 그릇 함께 먹을 사람조차

마땅치 않을 때

사는 건 자주 서늘하다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은

자꾸만 천한 일이 되고

암 수술하고 누워 있는 동창에게서

몇 장 남지 않은 잡지의

후기가 읽힐 때

생은 포자만큼이나 가볍다


수십 년 전 방공호 속에서

초현실주의 시를 읽었던 선배들은

이렇게 가볍지는 않았을까

바흐를 들으며

페노바르비탈을 먹었다는 그들은

지리멸렬한 한 세기를 사랑했을까


나는 아직도 생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상처에 대해서 알 뿐

안부를 물어줄 그 무엇도 만들어 놓지 못했다


대폭발이 있었다던 오래전 그날 이후

적의로 가득 찬 광장에서

생이여, 넌 어떻게 견뎌왔는지

기찻길에서 풀풀 날리던 사랑들은

얼마나 많이 환생하고 있는지

생각이 아프면 내가 아프다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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