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 이산하

김춘화
2025-07-18
조회수 309


아기 때 할머니가 달걀을 앞에 놓고

나한테 잡아 보라고 했다.

나는 방바닥을 겨우 겨우 기어가며

움켜잡아 보려고 애썼지만

손끝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밀려나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끝내 잡히지 않았다.


모슬포에서 알뜨르비행장을 지나고 송악산을 거쳐도

어느 곳이든 다른 비가 오고 다른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착하면 더욱 좋은 곳

넓은 정원의 배롱나무 그늘 아래

고요히 잠든 나무 주인의 이름이 작은 돌에 새겨진

제주도 서귀포 저지문화예술인 마을의 김창열미술관


거기 난공불락의 물방울이 있었다.

어릴 때 끝내 잡히지 않았던

거기 난공불락의 달걀이 있었다.

나는 달걀 하나를 잡으려고 한 게 아니라

달걀 너머의 그 어떤 세계를 취하려고 한 것이었다.


바람은 불지 않고 깊이 잠들면 배롱꽃이 되어 깨어난다.

나는 끝내 저 삼엄한 물방울의 옥쇄를 뚫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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