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속의 아버지 - 김명인

김계희
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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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비 속으로 가신다, 시간의
굳게 잠긴 빗장을 걷고
빗줄기가 풀어놓은 비낱의 창 너머 무수히
그어지는 텅 빈 골목길로
아버지 걸어가신다, 얼마만큼 쫓아가다
내 기억의 비 그쳐

다시 꽃밭이었을까요, 아버지
화안한 그 꽃밭 뭉개며 내 마음의 어둔
그림자로 우뚝 서 계시는 아버지
애야, 식구들 모두 모여 살 수 없단다, 네가
잠시만 떨어져 있어야겠다.

담을 것 없어도 주체할 길 없이 쏟아지는 잠과
잠의 깊은 늑골을 비집고
비가 온다 어느새
한 세상 비 속으로 저무는데
밥과 밤으로 이어지는 중년들을 흔들어 깨우며
머리맡에 앉아 계신 아버지, 기다려라
내가 너를 데리러 다시 올 때까지

그러므로 아버지, 제가 여기 있어야 한다면
저는 녹스는 제 몸을 온전히 닦아낼 수 있을까요?
칼날의 시간 작두 위에 세웠던 세월이여
아직도 식지 않는 증오 서리처럼 흐리는 창 너머로
아버지 비 속으로 걸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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