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수선집 - 도종환

김춘화
2020-03-25
조회수 596

길모퉁이 구두 수선집 의자에

그녀는 씀바귀처럼 앉아 있었다

뽀얀 얼굴에 가을 볕이 내려와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한 줄기는 볼우물 그늘 속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녀가 오래 걷거나 서서 버티는 동안

그녀의 무게를 떠받치느라 발밑에서 조금씩

뭉개어진 흔적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겸연쩍은 듯 배시시 웃고 있었다

프랑스 휘장을 높이 단 대형 쇼핑몰 옥상 주차장에서 

물건을 가득 사 실은 차량들이 줄지어 내려와

구두 수선집으르 흘낏흘낏 쳐다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도 물건도 고장나기가 무섭게 버려지고

새것은 늘 대량으로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는 세상에

망가지면 다시 고쳐 신을 줄 아는 스물몇 살의 그녀

언제고 고장날 수 있는 그의 생애를

고쳐서 다시 쓸 줄 알 것 같은 그녀가

바람에 몸을 흔들면 산박하 냄새가 날아오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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