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문득이라 불렀다 - 권대웅

김춘화
202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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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그 겨울을 우두커니라고 불렀다

견뎠던 모든 것을 멍하니라고 불렀다

희끗희끗 눈발이 어린 망아지처럼

자꾸 뒤를 돌아다봤다

미움에도 연민이 있는 것일까 


사랑도 너무 추우면

아무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표백된 빨래처럼 하얗게 눈이 부시고

펄렁거리고 기우뚱거릴 뿐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봄 햇빛 한 줌 


나무에 피어나는 꽃을 문득이라 불렀다

그 곁을 지나가는 바람을 정처 없이라 불렀다

떠나가고 돌아오며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이름 붙이고 싶을 때가 있다

홀연 목련이 피고

화들짝 개나리들이 핀다

이 세상이 너무 오래 되었나보다

당신이 기억나려다가 사라진다 


언덕에서 중얼거리며 아지랑이가 걸어나온다

땅속에 잠든 그 누군가 읽는 사연인가

그 문장을 읽는 들판

버려진 풀잎 사이에서 나비가 태어나고 있었다

하늘 허공 한쪽이 스륵륵 풀섶으로 쓰러져 내렸다

주르륵 눈물이 났다

내가 이 세상에 왔음을 와락이라고 불렀다 


꽃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든 꿈

꽃잎 겹겹이 담긴 과거 현재 미래

그 길고 긴 영원마저도

이생은 찰나라고 부르는가

먼 구름 아래 서성이는 빗방울처럼

지금 나는 어느 과거의 길거리를 떠돌며

또 다시 바뀐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권대웅 시집<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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