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 고영민

김춘화
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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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어디에서 오나

두부가 엉기듯


갓 만든 저녁은

살이 부드럽고 아직 따뜻하고


종일 불려놓은 시간을

맷돌에 곱게 갈아

끓여 베보자기에 걸러 짠

살며시 누름돌을 올려놓은


이 초저녁은

순두부처럼 후룩후룩 웃물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좋을 듯한데


저녁이 오는 것은

두부가 오는것


오늘도 어스름 녘

딸랑딸랑 두부장수 종소리가 들리고

두부를 사러 가는 소년이 있고

두붓집 주인이 커다란 손으로

찬물에 담가둔 두부 한모를 건져

검은 봉지에 담아주면


저녁이 오는 것

두부가 오는 것





고영민 시집 <봄의 정치> 창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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