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나 먹자, 꽃아 - 권현형

김춘화
20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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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자궁을 여는 순간

뜨거운 핏덩이가 뭉클 쏟아지듯

희고 붉은 꽃떨기들이

허공을 찢으며 흘러나온다


봄 뜨락에 서서 나무와 함께

어질머리를 앓고 있는데 꽃잎 하나가

어깨를 툭 치며 중심을 흔들어 놓는다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만개한 꽃 속에서 듣는다


오래 전 자본론을 함께 읽던

모임의 뒷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던


그 큰 키가 어떻게 베어졌을까


촘촘히 매달려 있던 꽃술들이 갑자기

물기 없는 밥알처럼 푸석푸석해 보인다

입안이 깔깔하다

한번도 밥을 함께 먹은 적 없이

혼자 정신을 앓던 사람아 꽃아


모를 일이다 누가 아픈지

어느 나무가 뿌리를 앓고 있는지

꽃아, 일없이 밥이나 먹자

밥이나 한 끼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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