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에 내가 진정한 현실에 눈을 뜬 뒤, 사람들은 나를 바람과 친구가 된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살던 바스토우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사막 지대의 작은 읍이었는데, 다들 바람을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바람을 견디다 못해 그곳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내가 바람, 곧 현실과 친구가 된 까닭은 내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거부하는 것은 몹시 어리석은 짓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을 거부할 때 나는 언제나 질 뿐입니다. 바람이 불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지금!
처음 ‘작업’을 접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과 씨름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질 것 같아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수동적이 될 거예요. 행동할 의욕까지 잃을 거고요.” 나는 대답 대신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그게 진실인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일자리를 잃었을 때 “일자리를 잃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와 “나는 일자리를 잃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무기력하게 들리나요?
‘작업’은 당신이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야 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일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생각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용납하거나 시인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마음의 갈등과 혼란 없이 지켜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녀가 병에 걸리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을 마음으로 거부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 점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멈추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있는 현실을 사랑합니다. 내가 영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거부하면 나 자신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있는 그대로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을 거부하면 긴장하고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마음이 편안하거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맞서기를 멈출 때 행동은 단순하게, 물 흐르듯이, 친절하게, 두려움 없이 일어납니다.
바이런 케이티- <네 가지 질문> 중에서
1986년에 내가 진정한 현실에 눈을 뜬 뒤, 사람들은 나를 바람과 친구가 된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살던 바스토우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사막 지대의 작은 읍이었는데, 다들 바람을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바람을 견디다 못해 그곳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내가 바람, 곧 현실과 친구가 된 까닭은 내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을 거부하는 것은 몹시 어리석은 짓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을 거부할 때 나는 언제나 질 뿐입니다. 바람이 불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지금!
처음 ‘작업’을 접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과 씨름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질 것 같아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수동적이 될 거예요. 행동할 의욕까지 잃을 거고요.” 나는 대답 대신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그게 진실인지 정말로 알 수 있나요?” 일자리를 잃었을 때 “일자리를 잃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와 “나는 일자리를 잃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무기력하게 들리나요?
‘작업’은 당신이 일어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야 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일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생각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용납하거나 시인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마음의 갈등과 혼란 없이 지켜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녀가 병에 걸리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을 마음으로 거부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 점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멈추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있는 현실을 사랑합니다. 내가 영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거부하면 나 자신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있는 그대로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을 거부하면 긴장하고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마음이 편안하거나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맞서기를 멈출 때 행동은 단순하게, 물 흐르듯이, 친절하게, 두려움 없이 일어납니다.
바이런 케이티- <네 가지 질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