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 천양희

김춘화
2024-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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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흐려지더니 마음이 먼저 젖는다

이런 날은

매운맛을 보는 게 상책이다

아귀찜을 먹으로 '싱싱식당'엘 간다

손아귀로 아귀를 뜯으면서 생각한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나

입속이 화끈거린다

나에게도 분명

매운 세상이 지나간 것이다

비처럼 젖는

세상의 예사로운 일이여

어떤 것은 눅눅하여

얼룩 된 지 여러 날이다

비둘기가 종종거리며 길바닥을 찍고 있다

자전거를 굴리며 소년이

천상병거리를 지나고 있다

시은은 죽어 거리를 남겼다

모든 확신은

증오로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생(生)의 후반에

우두커니 서 있다

별나지 않은 사람들의 별나지 않은 일에

귀 기울이는 저녁까지


비는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기를 써야 할 날은

오늘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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