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산책 - 이병률

김춘화
2022-05-09
조회수 195


남산을 지날 때면 점(占)이 보고 싶어진다

왜 흘린 세월이 한 번뿐이라고 했는지 알고 싶어진다

꼬리가 있었는지 뿌리를 가졌는지


남산에서는 오래 전을 탈탈 털어 뒤집어쓰고 끊어진 혈을 여미고 싶다

이빨이 몇이었는지 불에 잘 탔는지

모가지는 하나였는지 화석이 될 만했는지

속절없는 기미들을 가져다 멋대로 차려놓고 싶다


간절히 점을 보고 싶다

삭제된 것들의 입장들

우물쭈물하는 옛날들

세수 안 한 것들의 밤낮들

끝이 언제인지 모르면서

나에게 잘해주지 못한 안색들


결국은 이것들로 목숨 한 칸의 물기를 마르게 할 수 있는지를


조심하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으며

곧 해결될 거라는 말도 아닌

어서 끝내라는 말만 듣고 싶다


풍부한 공기에 대담히 말을 풀어놓고 싶다

이 숲 나무에서는 소금 맛이 나는지

그 맛에 사람 맛이 들어 있는지를 알고 싶다


나에게 이토록 박힌 것이

파편인지 비수인지

심장에서 내몬 사람이 하나뿐인지


사람을 갖겠다 해놓고는 못 가졌으면서

훗날 다른 생에서도 사람을 갖고  싶은지까지도






이병률 시집 <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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