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바다 성산포 5 - 이생진

김춘화
20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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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설듯 일어설듯 쓰러지는 너의 패배

발목이 시긴하지만 평면을 깨뜨리지 않는 승리

그래서 네속은 하늘이 들어 앉아도 차지 않는다.

투항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아니면 일제히 패배하라 그러면 잔잔하리라

그 넓은 아우성으로 눈물을 닦는 기쁨

투항하라 그러면 승리하리라


성산포에서는

살림을 바다가 맡아서 한다.

교육도, 종교도, 판단도, 이해도

성산포에서는

바다의 횡포를 막는일 그것으로 둑이 닳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오늘 아침 하늘은 기지개를 펴고 바다는 거울을 닦는다.

오늘 낮 하늘은 낮잠을 자고 바다는 손뼉을 친다.

오늘 저녁 하늘은 불을켜고 바다는 이불을 편다.

바다가 산허리에 몸을 굽힌다.

산은 푸른 치마를 걷어 올리며 발을 뻣는다.

육체에 따뜻한 햇살 사람들이 없어서 산은 산끼리

물은 물끼리 욕정에 젖어서 서로 몸을 부빈다.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칼이다.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양이다.

그릇 밖에서 출렁이는 서글픈 아우성

목마를 때 바다는 물이 아니라 갈증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짐승이, 짐승보다 산이, 산보다 바다가

더 높은 데서 더 깊은 데서 더 여유있게 산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하늘이여 바다 앞에서 너를 쳐다보지 않는 것을 용서하라.

하늘이여 바다는 살았다고 하고 너는 죽었다고 하는 것을 용서하라.

너의 패배한 얼굴을 바다속에서 더 아름답게 건져 내는 것을 용서하라.

그 오만한 바다가 널 뜯어 먹지 않고

그대로 살려 준 것을 보면 너도 바다의 승리를 기뻐하리라.

하늘이여 내가 너를 바다속에서 보는 것을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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