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대하여 - 김명인

김춘화
2021-09-17
조회수 227


철길 옆의 가건물 사이로

둥근 지붕만 스쳐보이는 저기 기차는

제철의 무거운 몸을 사슬처럼 끌고

불꽃을 튀기기도 하며 요란스럽게

새벽의 차가움을 두드리고 지나가지만

밀고 가는 낯선 미지도 어느새 허전한 레일이 되어

여기서 보면 질주는 적막한 흔적인 셈인가


하지만 풍경 또한 순간의 정지停止를 넘어서서

저렇게 빠른 점멸로 물들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숙직시키지 못한다, 다만 스쳐지나게 할 뿐

그대가 끌고 온 세월, 그대의 것이 아니듯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으면서 기차는

기적을 울리면서


왜 바퀴를 굴려 스스로의 길 숙명처럼 이으면서

기차는 가야 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오는 벌판

저쪽에 마침내의 휴식이 있는지

덜컹거림은 낮게낮게 사라지고 한동안의

바람소리 이내 잔잔해질 테지만


여명의 선로 저쪽엔 더 많은 새벽이 기다리고 있다

정적을 휘저어놓은 저

불켜진 창 하나하나가

어둠에 스미는 분별의 눈일지라도

기차는 제 몸에 부딪히는 풍경만 일별할 뿐 순식간에

저렇게 힘차게 지우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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