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로 <조홍시가>

김계희
20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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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시가 - 노계(盧溪) 박인로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이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난 
품어 가 반기리 없슬새 글노 설워 하나이다. 


해석

쟁반 가운데에 놓인 일찍 익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유자가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도 반길 사람이 없어 그것으로 서러워하노라.


그림-차규선 作





노계(盧溪) 박인로

조선 선조 때, 지은이가 한음 이덕형이 접대로 내어놓은 홍시(紅柿=연감. 물렁하게 잘 익은 감)를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이다.  
옛 중국 사람의 고사[육적 회귤 고사]와 비교한 것에서도 유학자다운 취향이 느껴진다. 


육적(陸績) 회귤 고사(懷橘故事)
오나라 울림태수를 지냈으며 회귤고사로 유명한 인물.

여강태수를 지낸 육강()의 아들이며 187년에 출생하였다. 자는 공기()이다. 아버지를 여읜 5촌 조카 육손과 함께 자랐다. 부친 육강이 원술과 대적하게 되자 그의 가족은 오나라 손권에게 피신하였고 육강은 손책과 벌인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육적이 6세 때 원술을 접견하는 자리에 나온 감귤 3개를 가슴에 숨겨나오다가 떨어뜨리게 되었다. 이를 본 원술이 왜 감귤을 숨기느냐고 묻자 육적은 어머니께 드리려고 그랬다고 대답했다. 원술은 어린 소년의 효심에 감복되었고 이를 두고 회귤고사(), 육적회귤()이라는 말이 생겼다. 육적은 중국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효자로 기록에 전한다. 학문을 좋아해서 많은 독서를 하였고 곧은 성격으로 자기 주장이 강했다. 손권의 휘하에서 벼슬을 하였으나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울림태수()로 좌천되었다. 울림에서 병을 얻어 그곳에서 32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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