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 황인숙

김춘화
2021-08-31
조회수 291


빗방울보다 단단한 것들이

빗방울처럼 가볍게

맞받아치는 소리 들린다

또 하염없이 맞받아치는

냉장고 위 천장 구석

둘둘 말린 거미줄, 이라기보다 거미줄의 허물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이칠 때마다

풀썩, 풀썩 몸을 뒤챈다

이 방에서 거미를 본 바 없는데

저렇듯 거미의 자취가 종종 보인다

비 오는 날은 거미들이

공치는 날일 것이다

파리, 나방이, 잠자리, 하루살이

그 많은 날벌레도 그럴 것이듯


하필이면 급경사길이 많은 동네에서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를 종종 본다

비 오는 날 그분을 만나면

세상이 폐지처럼

거미줄처럼 눅눅해진다

할머니시여, 빗방울보다 단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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