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 안도현

김춘화
2022-08-02
조회수 96


나는 다시금 두더지네 집으로 빚을 얻으러 가야겠다

그들의 곳간에는 지렁이의 명아줏대지팡이가 즐비하고

비가 오면 쥐며느리의 황금요강으로 빗물을 받아 발을 씻는다 한다


보기 싫은 것을 보기 않기 위해 그들은 땅속에서도

두 눈에 안대를 하고 다닌다 빛을 경배하는 교도들을 피해

굴 속으로 들었다가 그 갱 속에서 땅강아지의 값비싼 비단치마와

달팽이의 탐험 모자를 채굴해 거부가 되었다고 한다 


한때 포클레인을 끌고 온 토목업자들과 119구조대가 동업하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삽을 들고 온 고고학자를 택했다 엉뚱함의 힘이 그들 것이다 


두더지네 집으로 들어가자면 우선 어깨를 동그랗게 말고

빛을 등지고 손톱을 삽날처럼 펼치고 땅을 긁어야 하겠지

그러면 나는 코도 입도 뾰족해져서 잠시는 서러워지겠다


지상에 없는 길을 내다가 떠난 파르티잔이 모처럼 그리워지겠다

햇빛아, 너는 배배 꼬인 다래넝쿨 아가씨의 머리나 빗겨주고 살아라

나는 뽕나무 뿌리에 난 여드름을 짜주며 일생을 소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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