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시킨 일이다 - 김경미

김춘화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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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읍내를 찾아간다 청춘이 시키는 일이다

시외버스가 시키는 일이다


철물점의 싸리 빗자루가 사고 싶다 고무 호스도 사서

꼭 물벼락을 뿜어 주고픈 자가 있다

리어카 위 가득 쌓인 붉은 육고기들의 피가 흘러

옆집 화원의 장미꽃을 피운다 그렇게

서로를 만들고 짓는 것도 청춘이 시켰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시계를 찼던 그때

하늘에 일 년 내내 뜯어 먹고도 남을 달력이 가득했던 그때

모든 게 푸성귀 색깔이었던 그때 


구름을 뜯어먹으며 스물세 살이 가고

구름 아래 속만 매웠던 스물다섯 살도 가라고 청춘이 시켰다

기차가 시켰다 서른한 살도 청춘이 보내버리고

서른세 살도 보내버리니 다 청춘이 시킨 것이었다


어느덧 옷마다 모조리 불 꺼진 양품점 진열장 앞

마네킹들이 물끄러미 바깥의 감정들을 구경한다

다투고 다방 앞 계단에 쪼그려 앉은 감정,

기차를 끌고 지나가는 감정, 한쪽 눈과 발목을 잃은 감정,

공중전화 수화기로 목을 감는 감정,

그 전화 끊기며 내 청춘이 끝났다는 것도 청춘의 짓이다


아직도 얼른 나가보라고 지금도 청춘이 시킨다

지금이라도 줄을 풀라고

기차와 시외버스와 밤과 공중전화가 시킨다 여전히 청춘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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