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의 죽음 - 서동욱

김춘화
2022-10-13
조회수 173


마흔에 폐인이 되었으니

그리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아니에요

밤나무의 키처럼

딱 하느님의 순리죠

 

뭘 준비하지는 못했습니다

서류가 많아 헷갈려 죽겠습니다


돌아가지 못합니다

기운이 없거든요

가던 길가에 눕습니다

기운이 없거든요

 

참 변명 좋죠

'기운이 없거든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그리 늦은 것도 이른 것도 아니에요


먼지와 책, 가습기

서로 다투는 것들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어요

하느님의 말 상대가 다 사라지도록

정자은행에 맡긴 정자를 찾아다

터트려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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