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그늘이 참 좋아요 - 이정란

김춘화
2025-09-26
조회수 114


우주 비밀을 명상으로 푼 그분을 단번에 알아본 라훌라

성큼성큼 그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네


저는 이 그늘이 좋아요 정말 좋아요


그분의 법은 더함도 덜함도 없다는데


산중 약수처럼

새나오는 시간에 입술을 대고도

갈증에 시달리는 생은 늘

이쪽은 더하고 저쪽은 덜하고


병은 더하고 남은 생명은 덜한 다음에야

시간의 단맛에 매료돼


접시만한 시간의 그늘이 좋아요

시한부 생명이 아끼는 죽음만큼이나 깊어요


햇살에 겨우 녹은 산등성 눈길 밟듯

살짝 한번 짓밟아보고 싶어요


그늘이 깨질까요 발목을 동여맸던 뱀이 풀어질까요


아는 사람 없는 분주한 거리에 서서 멍한

당신도 맑게 깊고요


들판을 똑똑 노크하며 걷는 내 작은 그늘


우주의 뒷문 여느라 딸랑거리는 열쇠 같아 좋아요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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