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다는 것 - 고운기

김춘화
2022-03-14
조회수 188


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갓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고운기 시집 <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 창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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