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여관 - 이병률

김춘화
20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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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일 년에 한번을 온다

몸을 씻으려도 오고 옷을 입으려고도 온다


돌이킬 수 없으려니

너무 많은 것을 몰라라 하고 온다


그냥 사각의 방

하지만 네 각이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제 마음에 따라 여섯 각이기도 한 방


물방울은 큰 물에 몰두하고 

소리는 사라짐에 몰두한다


얼룩은 옷깃에 몰두할 것이고

소리는 사라짐에 몰두한다


얼룩은 옷깃에 몰두할 것이고

소란은 소리에 몰두할 것이다


어느 이름 없는 별에  홀로 살러 들어가려는 것처럼

몰두하여


좀이 슬어야겠다는 듯

그 또한 불멸의 습(習)인 것


개들은 잠을 못 이루고 둥글게 몸을 말고

유빙이 떠다니는 바깥


몰려드는 헛것들을 모른 체하면서

정수리의 궁리들을 모른 체하면서 


일 년에 한 번 처소에 와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을 몰두한다







이병률 시집 <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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