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왔다 - 이성복

김춘화
202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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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동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 가보다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의 목을 껴안 듯이 비틀었는가 나도 안다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 때로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굽은 등에 푸른 싹이 돋을까 묻고 또 묻지만 비계처럼 씹히는 달, 항시 우리들 삶은 낡은 유리창에 흔들리는 먼지 낀 풍경 같은 것이라고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도 싶었다 세차장 고무 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며 아우성치며 울고불고 몸부림치면서……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동네의 더디고 나른한 세월들, 풀잎 아래 엎드려 숨죽이면 가슴엔 윤기나는 석회층만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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