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 남진우

김춘화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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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으슥한 서가 한구석 

아주 오래된 책 한권을 꺼내 들춰 본다 

먼지에 절고 세월에 닳은 책장을 넘기니 

낯익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전생에 내가 썼던 글들 아닌가 

전생에서 전생의 전생으로 글은 굽이쳐 흐르고 

나는 현생의 한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다 

한 세월 한 세상 삭아가는 책에 얼굴을 박고 

알 수 없는 나라의 산과 들을 헤매다 고개를 드니 

낡은 선풍기 아래 졸고 있던 주인이 부스스 눈을 뜨고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 말한다 


인생은 짧고 낮잠은 길다 


으슥한 서가 한 구석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책을 꽂고 

조용히 돌아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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